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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이자 배우인 정지훈 (비)는 1998년 6인조 그룹 '팬클럽'의 멤버로 데뷔했으나, 제대로 된 활동을 못 하고 1999년에 나온 2집을 끝으로 팬클럽이 해체하며 깨끗하게 묻혔습니다. 딱히 눈에 띄는 활동을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2집까지 나왔습니다.

그후에도 가수의 꿈을 품고 안양예고를 다녔으나 극심한 가난에 병원비를 못 대서 결국 어머니상을 당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도중, 박진영의 눈에 띄어 JYP에 연습생으로 들어간다. 박진영이 후에 밝힌 섭외 이유는 비에겐서 절박함이 보였습니다고. 무반주로 춤을 몇시간씩 춰보라는 말도 안되는 요구도 당장 해낼 만큼 절박함이 보였습니다고 합니다. 그 예로 돈이 없어서 우유에 불린 라면으로 삼시세끼를 때우거나 옷 살 돈이 없어 땀에 절은 트레이닝 복을 한달내내 입고 다닌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 때의 기억 때문인지 아직도 자신에겐 밥을 사주는 사람을 매우 좋아합니다고 합니다. 이른바 자수성가의 아이콘 중 한 명이라고 볼 수 있고, 후에 그가 메인 MC를 맡는 더 유닛의 제목같이 리부팅된 사례이기도 합니다.



박지윤 등의 백댄서로 활동하며 무대 감각을 익혀 온 그는 2002년 "나쁜 남자"로 솔로 데뷔를 하며 가요계에 복귀했습니다. 이후 승승장구해 JYP 사단의 초창기 멤버 중 god와 같이 가장 성공한 인물이 되었으며 그 후 박진영과 결별, 2008년 제이튠엔터 설립으로 독자 활동에 나섰다. 그러나 군에 입대하면서 제이튠엔터를 떠났고 2011년 제이튠엔터는 박진영이 인수하여 JYP로 사명이 변경되었습니다. 2013년 초까지 비의 소속사는 레이니엔터테인먼트였습니다. 그러다가 2013년 5월, 큐브엔터테인먼트와 계약했습니다. 2015년 9월 큐브와 계약이 만료된 후엔 1인 기획사인 레인컴퍼니를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성함

[RAIN]

본명

정지훈[鄭智薰]

출생

1982625[37]- 충청남도 서산군

,몸무게,혈액형

185cm- 74kg- O

본가 가족관계

아버지-11녀중첫째

결혼유무, (배우자 정보)

김태희[2017-현재]

자녀관계

[2017년생]

출신학교

서울창서초등학교

숭문중학교

안양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

경희대학교 포스트모던음악학과 학사

경희대학교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퍼포밍아트학 [중퇴]

단국대학교문화예술대학원 공연예술학과뮤지컬ᆞ연극전공 석사

첫작품

1998년그룹 팬클럽 1 <FANCLUB>

회사(소속사)

레인컴퍼니




02년 전반기에 타이틀곡 '나쁜 남자'를 통하여 솔로로 가수 데뷔를 하였고 나름대로 관심할 만한 신인으로 관심을 끌었지만, 당시 가요계가 2002 월드컵의 대국민적인 관심이 쏠린 시기라서 YB 빼고는 가요계가 퇴보되어 있던 상황이라 전대의 가수들만큼 관심받지 못했습니다. 기대보다 반향이 없자 회사에선은 음반 활동을 접자고 했지만 비가 후속곡 '안녕이란 말대신'으로 조금 더 활동해 보자고 강력하게 주장하여 후속곡 활동을 하게 됩니다.

결국 월드컵이 끝난 후반기에는 안녕이란 말 대신으로 관심을 끌며 당시의 시청자들에겐 기억될 만한 성적으로 1집 활동을 마무리했습니다. 이 곡으로 공중파 방영인 SBS 관심가요에선 1위도 하게 되고 특유의 미소로 광고도 많이 찍으며 인지도도 높였으니, 비의 주장이 빛을 본 셈. 결국엔 SBS 가요대전과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선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관심할 만한 신인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비가 폭넓은 인지도를 얻기 시작한 것은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참석하면서부터입니다. 잠시는 "저 듣보는 누구냐?"는 평을 들었으나 천생연분에선 화려한 댄스 실력을 선보인 것이 화제가 되었고 건강한 몸을 바탕으로 각종 신체 대결 게임들에선 타 남자연예인들을 압도하며 점차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 당시 지나친 겹치기 참석으로 팬들에겐은 "JYP 먹여 살리는 소년가장"이란 말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비가 예능으로 얻은 관심과 인지도가 심각한만큼 비의 예능에 대한 사랑은 남다릅니다.. 보통 짬이 차면 예능은 안돌고 신비주의 이미지로 가는 연예인이 많은데 비는 신인 때와 마찬가지로 활동 시작하면 예능을 많이 도는 편입니다. 



이렇게 인지도를 쌓아가던 비가 결정적으로 탑스타로 자리매김한 것은 2003년 KBS의 드라마인 '상두야 학교 가자!' 에 주연으로 참석하면서부터. 그 뒤에 발표한 2집인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 초대박을 치고 이후 드라마 '풀 하우스'가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권에선 대박이 터지면서[태국에선은 시청률이 63%가 나왔다고 합니다] 명실상부한 탑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성공했습니다는 자수성가형 스토리, 국위선양을 유다르게 좋아하는 한국인의 정서, 드라마 '풀 하우스'의 후광효과[내용 중 탑스타로 출현합니다] 등이 맞물리며 당대의 각종 광고를 휩쓰는 등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몇몇 사람들은 이 시기에 가수로서의 이미지는 희박해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게릴라 콘서트에 도전했습니다. 참패하기도 했습니다고 알고 있으나 상두야 학교 가자는 2003년 10월 방영을 시작하였고, 게릴라 콘서트는 2003년 1월에 방영되었으니 아직 배우 활동을 시작하기 전이므로 듣보 연예인이었을 수는 있어도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배우의 이미지보다 약하던 시기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풀하우스 이후 나온 3집 It's raining으로 한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에선도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3집으로 2004년 가요대상을 석권함과 동시에 아시아 밀리언셀러로 등극했습니다. 그리고 비는 한류열풍과 '풀 하우스' 의 관심을 등에 업고 해외로 진출, Rain이라는 이름으로 아시아권 투어를 비롯 미국에선도 활동했기에 한국이 분출한 제1세대 월드스타라고 뉴스에 의해 포장되지만 자기 홍보를 크게 한 뉴스플레이에 불과하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이런 평은 초창기엔 극히 호감형이었던 비의 이미지를 깎아먹는 족쇄로 작용하는 결과로 후일 이어집니다.

그러나 당시 중국에선 많은 관심을 끌었던 장나라나 안재욱, 일본의 BoA나 배용준 등이 매우 커다란 관심에도 불구하고 그 관심이 특정국에 한정되었던 특징이 있는 반면 비의 경우 아시아권에선 폭 넓은 관심을 끎으로써 기존의 한류 스타들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였던 것은 관심할 만합니다. 3집 'It's raining'의 음반판매량과 이어지는 콘서트 투어가 그 방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시아 전역에선 100만장 이상을 팔았고 아시아 여러 도시의 콘서트는 매진 행렬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그 관심은 대개 아시아권에 한정된 것으로 우리나라 뉴스에선 다루어진 서구권에선의 관심은 대부분 거품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미국에 진출한 이후 유명 방영 토크쇼에도 참석하고 영화에도 참석하였으나 정작 미국에 가서 Rain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두 유 노 레인? 대부분 모르고 그가 부른 노래와 제목은 더더욱 모릅니다. 비가 2006년 "타임지에선 뽑은 세계에선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한국 연예인 첫로 선정되던 시기가 이런 월드스타 이미지 마케팅이 우리나라에선 극도에 달했던 시점. 외국 배우들에겐 한국인 기자들이 하도 아냐고 물어본 통에 "유명한 거로 유명한 사람"이란 꼬리표가 생겨났습니다.




미국 공연이 무산되면서 사실상 가수로서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구권에선 가수로서의 인지도는 거의 없었고, 그나마 지켜본 평론가들로부터는 미국 트랜드에 몇 년 정도 뒤쳐진 촌스러운 음악이란 평을 들었습니다. 영화 스피드 레이서에선은 동양인 단역 정도로 인지가 되었으나 닌자 어새신에 주인공으로 참석하면서 헐리우드 배우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정도입니다.



바람의 파이터 의 주연으로 택해 데뷔하려 한 바 있으나 스케쥴이 어긋나 참석이 무산되었습니다. 당시 반응은 "어디 어줍잖은 아이돌 녀석이 감히 최영의 선생님을 연기하려 드느냐" 였고 비의 주연에 반대하는 서명운동까지 있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스케쥴이 안 맞는다는 이유로 정지훈은 하차, 바람의 파이터는 양동근으로 주연 배우를 바꾸고 다시 제작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바람의 파이터 문서를 참조.

바람의 파이터에선 하차한 후 정지훈은 [상두야 학교 가자]에 주연으로 연기에 데뷔하였습니다. 드라마 자체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으나 의외로 심각한 연기력을 선보였고 드라마도 워낙 호평이었기 때문에 좋은 커리어를 쌓게 됩니다. 그 후 결정적으로 비를 범 아시아권 스타로 끌어올린 [풀하우스]에선 대박을 터뜨리는 데 성공, 연기자로서 완전히 입지를 다지게 됩니다. 가수 출신이 연기자로 데뷔하는 것을 비판하는 뉴스 기사에선 ''비나 엄정화 정도로 연기를 합니다면 몰라도 매우 기준 이하들이 넘어옵니다"'는 식의 평판을 들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풀 하우스 이후는 작품 운이 잘 안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작품인 [이 죽일놈의 사랑],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도망자 Plan.B] 등에 참석하였는데 평타 정도를 기록한 [도망자 Plan.B][32]와 [이 죽일놈의 사랑]을 빼곤 대체로 흥행에 실패한 편입니다. [도망자 Plan.B]도 시청률 자체는 망한 수준은 아니지만 추노 같은 대세 드라마를 노리고 100억대의 대작 드라마급 투자를 한 데 비해선 파급력이 미약했습니다.이들 작품들의 공통점은 모두 전작에선 힛트를 친 제작진의 작품이란 것인데 작품 선정에 있어 매우 안정적인 결과를 선호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냐는 평도 있습니다. 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경우 호불호는 갈리지만 박찬욱 식 기괴함과 엉뚱함이 넘치는 영화로, 애초에 천만 관객 노리고 흥행코드 쫒은 영화도 아니기에 흥행 못했습니다고 까일 정도는 아닙니다.



영화 부분에선은 헐리우드에도 진출해 [스피드 레이서]와 [닌자 어새신]을 찍었습니다. [스피드 레이서]는 아시아 프로모션을 위한 단역에 불과했으나 [닌자 어새신]에선은 주연을 맡았습니다. 영화 자체는 많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나 주연을 맡았습니다는 사실 자체는 꽤 대단한 일입니다. 그 당시의 헐리우드에선 동양계는 흑인보다도 주연 맡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도망자 Plan.B] 이후 4년만에 SBS 수목드라마 [내겐 매우 사랑스러운 그녀]에 참석했습니다. 방영 이전에 중국에 32억에 선수출되며 중국 드라마 수출 역사상 최고가를 경신했습니다는 언플이 나왔는데 중화권에선 아직도 비의 흥행파워가 남아있습니다는 관심다. 단 시청률이 망해버렸네요... 8.2%로 시작해 시청률이 꾸준히 하락해 5.5%로 마감했습니다. 드라마 자체도 케릭터들의 감정선이 오락가락합니다거나 오그라든다는 혹평이 많았습니다. 

2015년엔 중국 드라마 [다이아몬드 러버]에 60억을 상회하는 개런티를 받고 참석했습니다. 중국의 저장위성과 안후이위성에선 동시 방영한 다이아몬드 러버는 2015년 방영당시 시청률과 인터넷 조회수, 이 두마리 토끼를 잡았습니다는 관심을 들으며 대성공합니다. 인터넷 다시보기 조회수는 종영할 당시 70억뷰를 넘겨서 중국 드라마 역대 6위에 랭크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다이아몬드 러버는 우리나라 중국 드라마 팬덤에선도 꽤 추천이 많이 되곤 하는 드라마로 비가 오래간만에 괜찮은 작품을 만났습니다는 평이 지배적이죠



2016년에 간만에 지상파 드라마인 [돌아와요 아저씨]를 찍었는데, 상대가 매우 막강해서 아쉬운 작품이 되고 말...은게 아니고 사실 망했습니다. 최종 시청률이 2.6%까지 폭락했습니다. 단 드라마 자체는 나름 팬층도 형성하였고 호평도 받았으나, [태양의 후예]에 쭉 밀려 버렸네요. 거기에 송송커플의 연기대상은 덤. [도망자 Plan.B] 이후로 드라마 운이 따르지 않는 듯. 그 뒤에 중국에선 빅토리아와 [팔월미앙]이라는 드라마를 가지기도 했습니다.